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의 54국 중 신분활국(臣墳活國)이었다.
백제시대에는 분차(分嵯), 분사(分沙), 부사(夫沙)라고도 불리운 파지성(波知城)이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16년에는 분령군(分嶺郡)으로 조양(兆陽), 충렬(忠烈), 백주(栢舟), 동원(董原) 4개의 속현(屬縣 현 보성군 고흥군 일대)을 가졌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양악(陽岳), 낙안(樂安)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018년(헌종 9)에는 나주부(羅州府)에 소속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뒤에 다시 지군(知郡)으로 승격되었다.
1466년(조선 세조 12) 지군(知郡)에서 군수(郡守)로 고쳤다.
1515년(중종 10) 군내에서 불미한 사건이 발생하여 현령(縣令)으로 격하되었다.
1524년(중종 19) 낙안현(樂安縣)이 다시 낙안군(樂安郡)으로 승격되었다.
1555년(명종 10) 낙안군(樂安郡)의 사노(私奴)가 주인을 죽인 사건이 있어 또 낙안현(樂安縣)으로 강등 시켰다. 1575년(선조 8) 다시 낙안군(樂安郡)으로 승격하였다.
19세기말까지 낙안군수는 순천진관병마동첨절제사( 順天鎭管兵馬同僉節制使)를 겸했다.
1895년(고종 32) 전국이 23부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전국에 331군을 두었는데 이때 순천도호부가 나주부(羅州府)관할 낙안군(樂安郡)이 되었다.
1908년(순종 1) 낙안군(樂安郡)이 폐지되면서 순천군 낙안면(樂安面)이 되었다.
1949년 순천읍(順天邑)이 순천시(順天市)로 승격되면서 승주군(昇州郡) 낙안면(樂安面)이 되었다.
1995년 시군 통합에 의하여 순천시(順天市)와 승주군(昇州郡)이 통합됨으로써 현재의 순천시(順天市) 낙안면(樂安面)이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