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평양조씨(平壤趙氏)는
조인규(仁規)가 중흥시킨 이후 고려 말과 조선조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고려조에서는 조인규(仁規)의 아들 4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가문을 번창케
했다. 장민공(莊敏公) 조서(瑞)는 검교찬성사, 충숙공(忠肅公)
조련(璉)은 첨의찬성사, 문정공(文貞公) 조후(珝)는 삼사사를 지냈으며
조위(瑋)는 첨의찬성사로 평양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조련(璉)의 손자 조린(璘)은 응양군 상호군으로 신돈(辛旽)을 제거하려다
발각되어 살해되었다.
조준(浚) : 조선의 개국공신
조성(晟) : 의약 ·산수 ·천문 ·지리와 성리학에 밝았다.
조욱(昱) : 조광조(光祖)의 문인으로 용문산(龍門山)에 은거하여 '용문선생(龍門先生)'으로 알려졌다.
조대임(大臨) : 태종의 부마인 평양부원군.
조효산(孝山) : 정종의 부마.
조관국(觀國) : 숙종 때 역학자.
조박(璞)
조심태(心泰) 조문명(文命)
조희연(羲淵) : 고종 때 김홍집(金弘集) 내각에서 군무대신을 지냈다. 조선조에서는 문과 급제자 25명, 상신 1명,
공신 4명, 장신 4명을 배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