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원주이씨(原州李氏)
누리집 운영자
송암(松庵)
이영춘(李永春)입니다.
귀하(貴下)의 카페의 발전(發展)을 기원(祈願)하며 게시물(揭示物)을 수정(修正)하여 주시길 정중히
부탁(付託)드립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귀하의 카페 글 중 일부가 우리 원주이씨(原州李氏)
대동보(大同譜)와 상이(相異)한 점이 보여 글을
남깁니다,
위치:
한국인의 족보
>원주이씨(原州李氏)(신파)
이곳의
글을 삭제(削除)하여
주시던지 수정(修正)을
요청(要請)드립니다,
우리
원주이씨(原州李氏)
시조(始祖)
휘(諱)
신우공(申佑公)께서는 경주이씨(慶州李氏)에서 분적(分籍)하시어 우리 원주이씨(原州李氏)의 시조가 되시었고 그 후
분파(分派)를 거처 휘(諱)
반계(攀桂)
공(公)이 경원군파(慶原君派)
파조(派祖)가 되시고
강릉대도호부사부군(江陵大都護府使府君)이신 휘(諱)
영화(英華)
공(公)께서 강릉공파(江陵公派)
파조(派祖)이시며 휘(諱)
민개(民介)
공(公)이 판도공파(版圖公派)
파조(派祖)이십니다,
허나 귀하의 카페에
소개되어 있는 우리 원주이씨(原州李氏)의 소개(紹介)글은 우리 신미대동보(辛未大同譜)에 나와 있는 글과
상반(相反)된 글 이므로 반드시
수정(修正)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원주이씨(原州李氏)(신파)
☜
이 제목은
原州李氏
로 정정 하여
주십시오,
2, 이알평의 후손이며 이거명의
12세손이다 ☜
이
문구(文具)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환원(還元)한 월성군파(月城君派)에서 잘못 인용(引用)
전기(轉記)하여 발생(發生)한 오류(誤謬)입니다,
바로
잡습니다,
시조(始祖)
상서공(尙書公)
세계표(世系表)
경주이씨(慶州李氏)에서도 우리 원주이씨(原州李氏)
대동보(大同譜)에서 시조(始祖)
상서공(尙書公)의 선계변무(先系辨誣)를 통하여 주장(主張)하였듯 신우공(申佑公)은 7세(世)여야 합니다,
아래의
세계표(世系表)는 경주이씨(慶州李氏)
중앙화수회(中央花樹會)에서 다음과 같이 <보학연구위원회 ‘97하계총회>를1997년 8월 5일 유림회관 인실에서 열어
가결(可決)
하였다고
한다,
一世--거명(居明)
※遠代孫(원대손)
二世--금현(金現)
三世--금서(金書)
四世--윤홍(潤弘)
五世--승훈(承訓)
六世--주복(周福)
七世---칭(__)--------신우(申佑)
이렇게
수정되었습니다,
즉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의 원손(遠孫)이며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
:
경주 이씨의
일세조)의 12세손으로 가 아닌 휘(諱)
이거명(李居明)의 7세손(世孫)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귀
벽진이씨(碧珍李氏)
종친(宗親)님과 홈페이지의 발전(發展)을 기원(祈願)드립니다,
기타 의문점이나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http://wonjulee.kr/ 나 wjqntja@daum.net 연락 주시면 언제든지 성심껏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송암(松庵)
이영춘(李永春)
드림
추신:
소개글을 아래의 글로
바꿔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원주이씨 유래
원주이씨(原州李氏)는 신라개국공신(新羅開國功臣)
표암공(瓢巖公)
휘(諱)
알평(謁平)을 비조(鼻祖)로 모시고,
고려초엽(高麗初葉)
신우(申佑)는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나라에 공(功)이 있어 경흥군(慶興君)에 봉작(封爵)되어 호장(戶長)으로 원주(原州)에 세거(世居)
하면서
본관(本貫)을 경주(慶州)에서 분관(分貫)하였고,
3파(三派)
후손(後孫)을 두었는데 경원군(慶原君),
강릉공(江陵工),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으로 나뉘었으며,
경원군
반계(攀桂)는 고려공민왕조(高麗恭愍王朝)에 신호위령중랑장(神虎衛領中郞將)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이르러 고려(高麗)가 국운(國運)이 다하여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을 지킨 두문동(杜門洞)
72현인의 한분이며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원주 치악산 아래 사전리로
은둔(隱遁)하였다.
태종(太宗)과는 구의(舊誼)가 있어 우의정(右議政)으로 불렀으나 불응(不應)하고,
왕의 행차가 문전에
당도하니 나가지 않고 음약단설(飮藥單設)하고 절사(節死)하였다.
태종(太宗)이 그 절의(節義)를 가상히 여겨 경원군(慶原君)에 봉작(封爵)하고 충절(忠節)이라 시호(諡號)를 내렸다.
유적(遺蹟)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정암리 황직동
계좌에 모셔있다.
공은 아들 사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이(__)는 대제학공파,
차남
견(肩)은 정산공파,
3남
요(瑤)는 파주공파,
4남
족(足)은 산음공파이다.
경원군의 아우
봉례공(奉禮公)
을계(乙桂)의 손자
강릉대도호부사부군(江陵大都護府使府君)
영화(英華)는 단종(端宗)이 폐위(廢位)되니 벼슬을 버리고 전남 해남군 마산면
산막리로 낙남(落南)하여들 6형제(兄弟)를 두었는데 맹건(孟健),
충건(忠健),
인건(仁健),
의건(義健),
예건(禮健),
지건(智健)이요.
강릉공(江陵公)의 증손(曾孫)
충정수사(忠淸水使)
계정(繼鄭)
장군(將軍)은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과 함께 해전(海戰)에서 공을 세우다 전사(戰死)하였으니,
장군(將軍)의 유물(遺物)은 해남 묘동 지방문화재
159호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왜란(倭亂)
당시
수사공(水使公)
외 여덟 분의
충신(忠信)은 증손(曾孫)
회령부사(會寧府使)
숙형(淑亨),
현손(玄孫)
훈련판관(訓鍊判官)
대행(代行),
현손(玄孫)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호(琥),
현손(玄孫)
훈련원부장(訓練院部長)
황(璜),
현손(玄孫)
직장(直長)
순(珣),
현손(玄孫)
병조참판(兵曹參判)
원해(元海),
현손(玄孫)
의주부윤(義州府尹)
준(浚),
5대손(五代孫)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성춘(成春)으로서 이상 아홉 충신(忠臣)은 영산사(英山祠)에 배향(配享)되었으며,
현손(玄孫)
문길(文吉),
아들
광일(光一),
손자
신언(愼言)
3세(世)가 효행(孝行)을 드높여 세상에 시범코자
숙종(肅宗)
갑오(甲午-1714)년에 작설(綽楔)을 세우는 은전(恩典)을 내려 효자문(孝子門)은 현재에 이르고,
시조(始祖)
신우(申佑)의 차손(次孫)
민개(民介)의 12세손(世孫)
판도판서(版圖判書)
천명(天明)의 후손(後孫)으로 내려오고 있다.
우리의
자손(子孫)은 선조(先祖)들의 충의(忠義)와 절의(節義)를 바탕으로 후손(後孫)들은 의리(義理),
효행(孝行),
화합(和合)의 정신(正信)으로 웅비(雄飛)의 자손(子孫)이 되길 바란다.
이자료는 2011년 7월 28일"관리자"
<wjqntja@wonjulee.kr>님이 보내주신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