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이경록(慶祿)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 진도(珍島) 군수 등을 지냈다.
1618년(광해 10)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廢母論)에 반대, 중형을 받을 뻔하였으며 뒤에 장단(長湍) 부사와 경기방어사를 겸직하였다.
1623년(인조 즉위) 인조반정 때 김류(金瑬),
이귀(李貴) 등과 군사를 일으켜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세워 정사공신 1등(靖社功臣
一等)으로 완풍(完豊)부원군에 봉해졌고, 호조판서·총융사·호위대장을 역임하였다.
1626년(인조 6) 수어사(守禦使)가 되어 남한산성을 수축하였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에서 적군을 막다가 진중(陣中)에서 병사하였다.
산수(算數)에 밝고 독서를 즐겼으며 효심도 지극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 "마경언해(馬經諺解)"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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