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1년(명종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575년(선조 8)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1578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도승지로서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을 수습하여
1590년 평난공신 3등(平難功臣
三等)에 책록되고,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형조판서로 세자를 강계(江界)에 호종, 다음해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좌참찬으로 김시헌(金時獻) 등과 복수군을 조직하고, 1599년 우의정을 거쳐 다음해 좌의정이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가
1601년 병으로 사직하였다. 호성공신
3등(扈聖功臣 三等)에 책록되고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으로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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