肝:간 간, 膽:쓸개 담, 相:서로 상, 照:비칠 조.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 곧 ① 상호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 ②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
[유사어] 피간담(披肝膽)
[출전] : 韓愈(한유)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握手出肝膽하여 相示라하다.
[고사 1]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773∼819, 字 : 子厚)이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임명 되었는데 그의 친구 유몽득(劉夢得)도 파주자사(播州刺史)로 가게 되었다. 유종 원이 그것을
알고 울먹이면서“파주는 몹시 궁벽한 변방인데 늙은 어머니를 모 시고 갈 수도 없을 것이고 또한 그 사실을 어떻게 어머님께 알릴 수 있겠는가? 내가 간청하여 몽득
대신 파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종원이 죽 은 후 한유(韓愈)가 그 우정에 감복하여 유종원의 묘지명을 썼는데‘사람이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참된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것이다. 평소에는 서로 그 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즐겁게 웃는데 마치 간담(肝膽)을 내보이는 것 처럼 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우정만은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있으면 눈을 돌려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한다…….’라고 하였다.『柳子厚墓誌 銘』
韓(나라이름 한) 愈(나을 유) 厚(두터울 후) 誌(기록할 지) 銘(새길 명) 握(잡을 악)
[고사 2]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두 명문(名文) 대가에 한유[韓愈: 자는 퇴지(退之), 768∼824]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한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韓柳)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憲宗: 805-820) 때 유주 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墓地銘)을 썼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 자사(播州刺史)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劉夢得)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 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주]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 : 당시에 중국에서 유행한 문체는 “사륙변려문”이라하여 문장의 기교에 힘쓰던 형식이었다. 고문이란 사륙변려문체가 나오기 이전에 유행하였던 문체를 말한다. 고문은 사륙변려문에 비해 문장의 형식이 비교적 단순하고, 문장의 기교에 힘쓰기 보다는 전달하려는 의미에 중점을 두어 문장을 쓰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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