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윤위(威, 시호는 문헌)는 윤신달(尹莘達, 파평윤씨(坡平
尹氏)의
시조)의 8세손이며, 윤관(瓘) 장군의
증손자이다. 윤위는 1176년(고려 명종 6)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박사를 거쳐 기거랑, 이부랑중, 예빈소경 등을 지내고
1200년(고려 신종 3) 국자사업으로 호남에 갔을 때 남원에서 복기남이
반란을 일으키자 혼자서 적을 토평하여 평정 시켰다. 그
공으로 남원백에 봉해지고 남원을 식읍으로 하사 하자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윤씨에서 분관하여 남원으로 하였으나 파평윤씨로 다시 합본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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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윤형(衡) : 형조, 이조판서를 지냈다.
윤섬(暹) : 문열공(文烈公). 선조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들어가 태조의 조상이 이인임(李仁任)으로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아,
그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사복시정을 지냈다.
윤집(集)
: 윤섬의 손자. 척화론자로서 청나라에 잡혀가서 장렬한 죽음을 하여
오달제, 홍익한과 함께 3학사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윤휴(鑴) : 백호(白湖),
조선 중기 학자. 윤행임(行恁)
: 문헌공(文獻公). 이조판서, 양관대제학을 지냈다. 윤정현(定鉉)
: 효문공(孝文公). 예조, 이조판서, 중추부지사를 지냈다. 윤병정(秉鼎)
: 대사성, 이조판서, 돈령부판사를 지냈다. 윤전(鐫)
: 남인의 거물이며 대사헌, 이조판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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