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윤씨
(海南 尹氏) |
시조(始祖) : 윤존부(尹存富) |
시조 윤존부(存富)는 고려 중엽 때 인물이나
그후 7세손 까지는 출생지와 거주지 등이 분명하지 않다. 중시조인
8세손 윤광전이 고려 공민왕 때 사온 직장 영동정(令同正)을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아들들을 데리고 해남으로 피하여 살게 되어 본관을 해남으로
하였다.
12세 윤효정(孝貞)이 해남으로 옮겨가 재산을 털어
난민을 구휼하고 세금을 대납, 죄인을 방면하게 하는 개옥문(開獄門)을
3차례나 하여 적선지가(積善之家)라는 칭송을 들으며 해남윤씨의 기틀이
굳어지고 관향이 해남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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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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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윤구(衢) : 중종 때 호당에 뽑히고 사성을
지냈다. 윤의중(毅中) : 윤구의 아들.
대사헌·대사간·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윤선도(善道) : 윤의중의 손자.
시조의 대가로 유명하며, 한성서윤, 예조참의, 중추부첨지사 등을 역임하였고,
남인의 거두로서 예송 때는 송시열(宋時烈) 등과 대립하였다. 윤두서(斗緖) : 윤선도의 증손. 숙종 때 화백으로서 심사정, 정선과 함께
3재로 일컬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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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姓村) ] 전남 강진군 대구면 수동리 전남 강진군 도암면 향촌리 전남 강진군 강진읍 춘전리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전남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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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전라남도
해남(海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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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호(浩) |
주(柱) |
하(夏) |
재(在) |
현(鉉) |
영(泳) 순(淳) |
상(相) 식(植) |
병(炳) |
배(培) |
용(鎔)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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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洙) |
동(東) |
환(煥) |
기(基) |
탁(鐸) |
해(海) |
식(植) |
덕(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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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48,780명. (1985년) 55,627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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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 해남윤씨
중앙종친회 (www.haenam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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