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소복서 :
소경의 손자, 청주총관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복서의 9세손 격달에 이르기까지 직계 9세 9장군이 배출되었다.
신라 말기에 왕봉규의
난으로 인해 멸문지경에 이르렀으나 장군 격달이 왕건 휘하에서 공을 세워 대장군에 올라 고려 때까지 관직을 지냈으며, 진산부원군에 봉해진 계령,
문하시중 광보 등 7명의 정승이 배출되었다. 고려조에서 15만을 헤아리던 소씨는 몽고의 침입으로 두 번째 멸문지경이 되었다가 희철이
상장군에 올라 가운을 다시 일으키기 시작하여 1261년(고려 원종 2) 동지중추원사 무숭이 진주를 사관 받았다.
한편 도사를 거쳐
구례현감을 지낸 자파의 아들 7형제가 크게 현달하여 명성을 날렸는데, 그중 다섯째 아들인 세양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소동명
: 동지중추부사 소두산 : 동명의 아들, 숙종 때 평안도 병마절도사에 올랐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배척당할 때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