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온달(達, ?~590)장군은 고구려
25대 평원왕(平原王)의 딸 평강공주(平康公主)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그때부터
우리나라 온씨가 시작되었다. 온달은 590년 한강 이북의
땅을 찾고자 출전했다가 전사하였다. 그러나 그후의
기록이 없어져서 후손 중 고려 공민왕 때에 예조판서를 지낸 온선과
우부시랑을 지낸 온신 형제가 있었다. 온신은 공민왕
15년에 신돈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봉성으로 폐출되어 대를 이어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온신(信)을 1세 조상으로 하고 본관을 봉성으로 하였다. 그러나
온신의 7세손 온효진이 북청주(북청)에 살면서 호적의 오기로 청주로
분관이 되었으며, 온선과 온신의 14세손 온희영이 경주에 살면서 경주로
분관이 되었다. 그 외에 단양온씨, 온양온씨 등이
있으나 모두 같은 혈손이라며 온달을 도시조로 하고 봉성온씨로 환적하여
온씨 중앙종친회를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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