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는 좌의정 진원(鎭遠)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형수(亨洙)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검열·교리 등을 지냈다. 1745년 동지사 조관빈(趙觀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동래부사·경상도관찰사·대사성 등을 지냈다.
1751년 대사간으로 있을 때 신임사화로 화를 입은 아버지의 신원(伸寃)과 가해자인 소론의 처벌을 극론하다가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부제학·대사헌·이조판서·지중추부사를 거쳐
1760년 우의정에 올랐다.
홍봉한(洪鳳漢)
·김상복(金相福) 등과 우의가 깊었는데, 이들이
차례로 정승이 되자 사람들이 삼태지우(三台之友)라고 불렀다.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서도(西都) 밀행을 막지 못한 책임을 느껴 영의정
이천보(李天輔), 좌의정 이후(李) 등과 함께 자살했다고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