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에는 습천군(濕川郡)으로 불리웠다.
고구려의 장천성군(長淺城郡)이었다. 757년(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16) 때에 장단(長湍)으로 개칭, 우봉군(牛峰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01년(고려 목종(穆宗) 4) 시중(侍中) 한언공(韓彦恭)의 고향이라 하여 단주(湍州)로 승격시켰다. 1018년(현종
9) 다시 장단현(長湍縣)이 되었다. 1062년(문종(文宗)
16) 개성부(開城府)에 직속되었다. 1410년(조선 태종(太宗)
10) 송림현을 폐합하였다. 1414년 이웃 임강현(臨江縣)과 합쳐서 장림군(長臨郡)또는
장단이 되었다. 같은해 해에 다시 송림·임강현으로 분리되었다가 재편되어 임진현에 병합되면서 임단현(臨湍縣)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419년(세종 1) 송림현과
임강현을 분리하여 장단현(長湍縣)이라 개칭하게 되었다.
1456년(세조(世祖) 2) 때에는 중궁(中宮, 정희왕후 윤씨)의 3묘(三廟)가 이 땅에 있다 하여 장단군(長湍郡)으로 승격시키고, 치소(治所)를 당시의 백악산(白岳山)의 남록(南麓) 임진(臨津)에서 도원역(桃源驛)으로 옮겼다. 1469년(예종(睿宗)
1) 때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621년(광해 13)
방어사를 겸하면서 부치는 백악산 남방인 옛 임진현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1866년(고종 3) 일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부로 복구되었다.
조선 후기인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지금과 같이 되었다.
별칭(別稱)으로 장천성(長淺城) ·야야(耶耶) ·야아(夜牙) ·단주(湍州) ·장림(長臨) ·임단(臨湍) 등이 있다.
관할구역은 장단면(長湍) ·군내면(郡內) ·진서면(津西) ·소남면(小南) ·대남면(大南) ·강상면(江上) ·대강면(大江) ·장도면(長道) ·장남면(長南) ·진동면(津東)의 10개면이다.
- 북한지역
1945년 국토가 분단되면서 38도선 이북에 들어간 개풍군의 영북면·영남면·북면(3면)과 장단군의 강상면·대남면·소남면·대강면·장도면(5면) 등이 합쳐져
장풍군이 되었으며, 1949년 개성부는 개성시가 되었다. 6·25전쟁 후 장단군의 장남면·진동면·군내면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이 군사분계선 이북의
북한 관할하에 들어갔다. 1952년 개풍군이 개성시에 포함되고 개풍군과 장풍군(장단군
진서면)의 일부를 분리하여 판문군을 신설하였다. 1954년 이들 지역이 황해북도에 이전되었다가
1955년 개성시·개풍군·판문군이 합쳐져 개성직할시가 되었으며, 1961년 황해북도에 속했던 장풍군과 강원도 철원군 일부를 개성직할시에
편입했다.
- 남한지역
1963년 장단군 군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 임진면에 편입되었다.
1972년 장단군의 장단면·군내면·진서면·진동면이 파주군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파주군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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