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풍현(咸豊縣)과 모평현(牟平縣) 2현(縣)의 합명(合名)이다.
선사시대에는 진국에 속해있었고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는데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형성되어 우리 함평에도 1~2개의 소국이 있었음을 할 수 있다
백제(百濟) 때에는 굴내현(屈乃縣)과
다지현(多只縣)의 양현이다.
통일 신라(統一新羅) 757년(경덕왕(景德王)
16) 굴내현을 함풍현(咸豊縣)으로 고쳤고, 모평현(牟平縣)은 다지현(多只縣)을 다기현(多岐縣)으로 개칭하고 물아혜군(勿阿兮郡)의 속현으로 하였다.
굴내현은 오늘의 함평읍, 손불면(孫佛面), 신광면, 대동면 지역이며, 다지현은 현 나산면, 해보면,
월야면 지역이다. 고려(高麗) 태조 (太祖) 때 모평현(牟平縣)이라
불려졌으며 무안과 영광군의 속현이었다.
1392년(조선
태조 원년) 해제현과 임치현을 함풍현에 병합하였다.
1409(태종 9)에는 함풍현(咸豊縣)과 모평현(牟平縣)을 통합하면서 함풍에서 "咸"자 모평에서 "平"자를 따서 함평현(咸平縣)이라 개칭되었다(이때 함평현역은 동현내면(東縣內面) ,서현내면(西縣內面), 영풍면(永豊面),
해제면(海際面), 다경면(多慶面), 대동면(大洞面), 손불면(孫佛面), 신광면(新光面), 평릉면(平陵面), 식지면(食知面), 해보면(海保面), 월악면(月岳面), 갈동면(葛洞面), 대야동면(大也洞面)등 14개 면이었다.)
1413년(태종 13) 함평현(咸平縣)에 최초의 중앙 관원인 현감을 두었다.
1895년 5월
함평현(咸平縣)이 함평군(咸平郡)으로 개칭
1932년
11월 식지면과 평릉면을 합병하여 나산면(羅山面)을 신설 9개면이 되었다.
1963년 1월 함평면(咸平面)이 함평읍(咸平邑)으로 승격되었다(1읍 8면).
1973년 7월
학교면(鶴橋面)의 상옥, 월송, 금곡, 백호 4개리가 대동면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일부로 함평읍 성남리 일부와 학교면(鶴橋面) 사거리 일부가 엄다면(嚴多面)에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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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읍 [ 함평읍(咸平邑) ] 8면
[ 신광면(新光面), 엄다면(嚴多面), 나산면(羅山面), 월야면(月也面), 손불면(孫佛面), 학교면(鶴橋面), 대동면(大洞面), 해보면(海保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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