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가락국(駕洛國)의 문화(文化)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42년 가야 김수로왕 가락국(금관가야) 창건하였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新羅)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文武王) 20) 금관소경(金官小京, 김관소경)을 두었다. 757년(경덕왕(景德王)16) 금해소경(金海小京,
김해소경)으로 고쳤다.
고려 초기(高麗初期)인 940년(태조 23)에는 금해부(金海府,
김해부)로 고쳐 임해(臨海) 금주(金州) 등으로 불리웠으며,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원(金 )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난(亂)을 평정(平定)하여 금녕도호부(金寧都護府,
김녕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308년 금주목(金州牧, 김주목) · 1310년
김해부(金海府, 금해부)로 개칭되었다.
조선(朝鮮) 때 와서는 태종(太宗)이 다시 김해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세조(世祖) 때 김해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金海郡)이 되었다.
1981년 김해시(金海市)로 승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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