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三韓時代)에 진한(辰韓)에 속했다.
470년 고구려(高句麗) 때에는 주부토군(主夫吐郡)이라부리우다
757년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와서 장제군(長堤郡)으로 개칭하여 그 관할 하에 4개 현(顯)을 두었다.
고려(高麗) 성종 때 수주(樹州)·안남(安南)·계양(桂陽)·길주(吉主)
등으로 고쳐 불렀다. 문종 때에 안남(安南) 또는 부평(富平)이라 불렀다.
1310년(충선왕 2)에 지금의 부평(富平)이 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도호부(都護府)가 되었다.
1914년 군부(郡府) 폐합령에 따라 넓은 지역이 인천부(仁川府)에 속하게 되고, 나머지 지역과 주변 일부 지역을 합쳐서 부천군으로 발족하였다.
그후 인천과 서울의 팽창으로 주읍(主邑)인 부평이 인천에, 9개 리가 서울에 편입되어 소사(素砂) 1읍과 9면을 관할에 두었다.
1973년 7월 1일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9면이 옹진군·시흥군·김포군에 이관되고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었고,
1975년 김포군의 오정면이 부천시에 편입되었다.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증가로 중구를 원미구(遠美區)와 오정구(梧丁區)로 나누고, 역곡동·중동·상동을 제외한 남구는 소사구(素砂區)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5년 인천광역시 부평구 서운동 일부가 오정구 삼정동에 편입되었고, 원미구 중1동이 중1동과 3동으로 나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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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구 20동
[ 심곡1동, 심곡2동, 심곡3동, 원미1동, 원미2동, 소사동, 역곡1동,
역곡2동, 춘의동, 도당동, 약대동, 중동, 상동, 중1동, 중2동, 중3동,
중4동, 상1동, 상2동, 상3동 ] 소사구 10동
[ 심곡본1동, 심곡본동, 소사본1동, 소사본2동, 소사본3동, 범박동,
괴안동, 역곡3동, 송내1동, 송내2동 ] 오정구 7동
[ 성곡동, 원종1동, 원종2동, 고강본동, 고강1동, 오정동, 신흥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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