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4년(태종 14) 식년문과에 장원. 예빈주부,
사헌부 감찰(司憲監察) 등을 지낸 뒤 세종 때 예조와 이조의 정랑, 집현전 학사(集賢殿學士)
등을 거쳐 1425년(세종 7) 직제학(直提學)에 올랐으며,
1427년(세종 9) 문과중시에 장원했다.
1431년(세종 13) 정초와 함께 대통력을 개정하고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을
개정했으며 이듬해 예문관 제학·동지춘추판사를 지냈다. 1440년(세종 22)
형조판서가 되고, 1442년(세종 24) 대제학으로 '사륜요집(絲綸要集)'을
편찬했다. 그 후 좌참찬, 예조, 이조, 공조, 병조의 판서 등을 지내고,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을 도와 우의정에 승진하고,
정난공신 1등(靖難功臣
一等)으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455년(세조 1) 세조가 즉위하자
영의정에 오르고 좌익공신
2등(佐翼功臣 二等)이 되었다. 1468년(세조 14)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다시 익대공신 3등(翊戴功臣 三等)이 되고, 1470년(성종 1) 원상으로서
서정을 총괄했으며, 1471년(성종 2) 좌리공신
2등(佐理功臣 二等)이 되었다.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학자의 한사람으로서 천문, 역법, 아악 등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고,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등과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이 컸으며, 권제(權嗇)
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었다. 저서에 학이재집(學易齋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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