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인천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서민 출신이었으나 영조의 서녀(庶女)
화완옹주(和緩翁主)의 양자가 되면서부터 자유로이 궁중에 출입,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1764년(영조 40) 16세 때장원봉사(掌苑奉事)가 되고,
1766년(영조 4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수찬에 올랐다. 1768년 20세에
승지(承旨)가 되고, 이듬해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거쳐 호조참의 및 호조와 공조의 참판을 지냈다.
1775년 세손(世孫 : 正祖(정조))이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게 되자, 홍인한(洪麟漢) 등과 이를 극력 반대, 유언을 퍼뜨려 세손의 비행을 조작하는 한편 심상운(沈翔雲)을 시켜 세손을 보호하는 홍국영(洪國榮)을 배척하는 등 세손을 모해(謨害)하려고 하였다.
이듬해 정조가 즉위하자 경원(慶源)에 유배, 사사(賜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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