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始祖) 정배걸(倍傑, 시호 弘文)은
초계 성산(草溪城山) 출신으로 1017년(고려 현종 8) 때 문과(文科)에
장원, 정종 때 좌습유·지제고를 거쳐 문종 때 중추원 부사로서 지공거
등을 지내고, 예부상서·중추사에 이르렀다. 사숙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치니 홍문공도라 불렀는데, 이것이 당시 사학인 12공도(十二公徒) 중의
하나였다. 홍문광학 추성찬황공신, 개부의 동삼사, 수태위, 문하시중,
상주국, 광유후에 추증되었다. 본관은 시조의 요람지가 초계이기
때문에 후손들이 초계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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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헌에는 ... . 고려 초의 학자 배걸(倍傑)을 시조로
한다. 그의 아들 문(文)도 예종 때 형부상서 ·정당문학 등을 지내며
문명을 날렸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광해군 때 온(蘊)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스승 인홍(仁弘, 瑞山鄭氏)이 대북파(大北派)의 권신(權臣)이
되자 절교하였으나 인홍이 참형을 당하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 주었다고 한다. 10여 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생활 중에
지은 '망북두시(望北斗詩)' '망백운가(望白雲歌)'는 잘 알려져 있다.
이 밖에 중종 때 윤겸(允謙), 선조 때 청백리 종영(宗榮), 영조 때 훈련대장을
역임한 여직(汝稷)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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