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인서(瑞)는 중국 사람으로 진(晉)나라
풍익대부로서 300년(신라 기림왕 3)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하여
살면서 아찬의 벼슬지냈다.
그의 후손 인빈(邠)이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 문하시사를 지내고
교수부원군(교수부원군, 교동, 현재 강화)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교동으로
하였다.
그러나 인빈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후손 인당을
중시조(1세)로 하였다.
인당은 고려 공민왕 때 서북면 병마사로서 압록강 서쪽의
파사부 등 삼참(三站)을 공략하고 개척한 공으로 참지정사에 올랐다.
|
[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인량(亮)
: 고려 때, 병부시랑을 지냈다. 인빈(邠) : 한림학사를
거쳐 문하시중을 지낸후 교수부원군에 봉해졌다. 인완(完)
: 의종 때, 형부상서에 역임했다. 인규(珪) :
명종 때, 문과에 급제후 판이부상서를 지냈다. 인현원(玄元)
: 응양군 대장군을 지냈다. 인정(貞) : 평장사를
지내고 석성군에 봉해졌다. 인대신(大紳)
: 병마절제사를 지냈다. 인당(璫) : 밀직사, 전라도
만호, 참지정사를 지냈다. 인근(瑾) : 조선 때
현령을 지냈다. 인철형(鐵衡) : 통훈대부, 군자감정을
지낸 후 부사를 역임했다. 인발(潑) : 선략장군으로
임진왜란 때에 정난원종2등공신이 되었다. 인치명(致明)
: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인명구(命龜) : 부호군을
지냈다. 인시구(時矩) : 통정대부를 지냈다.
인이헌(以憲) : 도총부 부총관를 지냈다. 인정상(廷相)
: 좌승지를 지냈다. 인석보(錫輔) : 고종 때, 경과별시에 급제했으며 글로 이름이
높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