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임계미(季美)는 고려(高麗) 초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평원부원군(平原扶安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7세손 임춘(椿)는 고려(高麗) 의종(毅宗) 때 진사(進士)를 지내다가 1170년(의종 24) 정종부의 난 때 겨우 화를 면하고 예천군 천서리(川西里)로 피신하여
그곳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였다. 그리고 서하처사로
일컬어졌으며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등과 함께 강좌 7현의
한 사람으로서 한문과 당시(唐詩)에 뛰어났다.
다른문헌에서는... . 시조는 임충세(林忠世). 임계미의 후손 임춘(林椿)의 큰아들로 고려시대에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추증되었으며, 예천에 살았다. 그 후
후손들이 예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