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7년(세종 29) 식년문과에 장원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고, 같은해 문과중시에 급제하고, 부교리를 거쳐 사가독서를
한 뒤 응교, 장령, 필선, 집현전 직제학 등을 지냈다. 1457년(세조
3) 홍문관 제학이 되어 왕명으로 '명황계감'을 한글로 번역했고,
충청도 관찰사를 거쳐 대사성에 올랐다. 이어 각 조의 참의를 지내고,
사은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참판으로 좌리공신 4등(佐理功臣
四等)이 되어
진성군(晋城君)에 봉해지고 예조판서에 승진했으며, 우참찬을 거쳐 정헌대부에
올라 이조· 형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좌참찬이 되었다.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이 높았다.
문집으로 삼탄집(三灘集)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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