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당나라 황족으로 송조에서 경조윤을 거쳐
이부상서에 이르렀다. 1099년(숙종 4) 중국에 난리가 일어나 요동으로
피란하였는데 난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목으로 참소당해 고려로 건너와서
윤관(尹瓘)의 집에 유숙하고 있었다. 윤관이 그의 두뇌가 명석함을
알고 왕에게 천거하자 왕이 즉시 불러들여 상서의 관직을 주었다.
그 후 여진이 대거 침입하므로 출전을 자원하매 왕이 기뻐하고 정토장군
도총독 병마대원수를 삼아 윤관, 오연총(吳延寵)과 함께 싸우게 하였는데
수개월을 싸웠으나 적세를 꺾지 못하고 다시 군병을 청하여 적을 대파
할 때 아들이 전사했다. 이에 분격하여 3일만에 적을 크게 무찌르고
돌아오다 동관에 이르러 병사했다.
왕이 심해 슬퍼하고 동주(東州, 지금의 鐵原)에 예장토록 하였으며 4방
30리를 재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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