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中宗) 8년(1513) 
            향제에서 태어났으며 개제(愷悌 : 뛰어난 모양)한 용모와 총명한 재주로 
            촉망을 받았고 8세 때 외가 쪽으로 취학하여 집을 떠났고 3년 동안이나 
            정성을 궐하자  " 부모님을 떠난지 몇 년이 되었는고 멀리 
            흰구름만 바라보네 불효한 죄 내 어찌 면하리요? 3년 동안이나 돌아가지 
            못했으니..." 이때 10세 였다. 그후 당숙부(堂叔父)인 문경공(文敬公)의 
            남긴 가르침을 이어 받아 성리학(性理學)을 연정(硏精)하고 효제(孝悌)의 
            도리를 다하였다.   중종 29년(1534)에는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며 35년(1540)에 행의(行誼)로 왕자사부에 발탁되는 등 학문의 
            명성이 높았으며 38년(1543)에는 예산현감으로 외직에 나가 청백(淸白)한 
            이도(吏道)로 치척을 올렸다.   39년(1544) 친상을 당하지 집으로 
            돌아와 3년동안 극진히 상을 지켰고 다시 벼슬에 나지 않으며 평소 두 
            아들을 가르침에 꼭 소학(小學)을 배우게 했고 조석(朝夕) 문안 때는 
            반드시 의관을 갖춰 대하였다.    또한 연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에 단풍정(丹楓亭)을 세워 후학 양성에 전념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그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는데 1955년 공의 유적을 기리기 
            위하여 유허비를 건립하였고 비분은 완산(完山) 이석종(李錫鐘)이 찬술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