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군의 손자요 판서공의 제二자이자 농서군의 외후손이다.
일찍이 다사다난한 고려말 공민왕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내직 외반을 두루 거치면서 청백한
이도정신으로 많은 업적을 쌓아 정순대부 판군기감사에 올랐다.
특히 공민왕 十一년(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남순(남쪽 방향으로 피난)하여 복주에 머물렀을 때
당시 복주자사로 있던 공은 부민들을 하나로 이끌면서 왕가를 호위하였고 성루를 굳게 하여 호적의 근접을 막았다.
이 때 공으로 공민왕은 복주란 고을 이름을 안동(동방을 평안하게 했다는 뜻)이라 개칭케 하고 격을 높혀 안동에 대도호부를 설치하여
공을 정순안동대호부의 안집사로 임명하였다.
이어 공민왕 十一년(1362년)에는 성균관 대사성에 올라 문교 예속의 진흥에 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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