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의(布衣)에서 발탁되어 1442년(세종 24) 지평(持平)이 되고 병조 ·형조 ·이조의 참의를 역임하였다. 1448년 전라도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로 전주부윤(全州府尹)을 겸직하여 선정을 베풀었으며, 1451년(문종 1)에는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가 되었다. 이때 단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권력을 남용 ·농단하는 신하들이 있어 이들을 탄핵하였다.
1457년 대사헌(大司憲)이 되었는데,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와 중추원판사(中樞院判事)에 이르렀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청백리(淸白吏)이
녹선되었다.
전남 장성의 추산서원(秋山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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