累:여러, 포갤 루. 卵:알 란. 之:갈 지(…의). 危:위태할 위.
알을 쌓아(포개) 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형세의 비유.
[준말] 누란(累卵).
[동의어] 위여누란(危如累卵). [유사어] 백척간두(百尺竿頭) [참조] 원교근공(遠交近攻). [출전]《사기(史記)》〈범저열전(范雎列傳)〉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모두 책사(策士), 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 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 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 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 시 상한 수가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 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 (張祿)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 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 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 民安)할 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 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 후 범저(장록)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 의 진가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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