輓:수레 끌 만. 歌:노래 가.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출전]《고금와(古今洼)》〈음악편(音樂篇), 《진서(晉書)》〈예지편(禮志篇)〉,
《고시원(古詩源)》
〈해로가(薤露歌)〉,〈호리곡(蒿里曲)〉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기
직전의 일이다.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제왕(齊王) 전횡(田橫)은 그 분풀이로 유방이 보낸 세객(說 客) 역이기(酈食其)를
삶아 죽여 버렸다. 이윽고 고조가 즉위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전횡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지금의 전횡도(田橫島)로 도망 갔다. 그
후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렸다. 전횡은 일단
부 름에 응했으나 낙양을 30여리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고 조를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에 남아있던 500여 명도 전횡의 절개를 경모하여 모두
순사(殉死)했다. 그 무렵, 전횡의 문인(門人)이 해로가(薤露歌),
호리곡(蒿里曲)이라는 두 장(章)의 상가(喪 歌)를 지었는데 전횡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노래했다. -해로가-
부추 잎의 이슬은 어찌 그리 쉬이 마르는가
[薤上朝露何易晞(해상조로하이희)]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露晞明朝更復落(노희명조갱부락)] 사람은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다기 돌아오나 [人死一去何時歸(인사일거하시귀)]
-호리곡- 호리는 뉘 집터인고 [蒿里誰家地(호리수가지)] 혼백을
거둘 땐 현, 우가 없네 [聚斂魂魄無賢愚(취렴혼백무현우)]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鬼伯一何相催促(귀백일하상최촉)]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 [人命不得少踟躕(인명부득소지주)]
이 두 상가는 그 후 7대 황제인 무제(武帝: B.C.141∼87)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 (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로 정해졌다고 한다.
[주] 해로가(薤露歌) : 인생은 부추 잎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음을
노래한 것. [주] 호리(蒿里) : 산동성(山東省)의 태산(泰山) 남쪽에 있는 산 이름. 옛 중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넋이 이곳으로 온다고 믿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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