邯:땅 이름 한. 鄲: 땅 이름 단. 之:갈 지(…의). 夢:꿈 몽.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榮 華)의 헛됨의 비유.
[동의어]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몽침(邯鄲夢枕), 노생지몽(盧生之夢), 일취지몽(一炊之夢), 영고일취(榮枯一炊), 황량지몽(黃粱之夢).
[유사어] 南柯一夢(남가일몽).
[출전] "심기제(沈旣濟)"의 ≪침중기(枕中記)≫.
당나라 현종(玄宗)때의 이야기이다. 도사(道士) 여옹(呂翁)이 한단(邯鄲)[하북성(河北省)내]의 한 주막에서 쉬고 있는데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가 옆에 와 앉더니
산동(山東)에서 사는 노생(盧生)이라며 신세 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에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 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속에서 점점 커지는 그 베개의 구멍 속 으로 들어가 보니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崔氏)로서 명문인 그 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 조롭게 승진했다. 경조윤(京兆尹:서울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을 거쳐
어사대부(御史大夫) 겸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올랐으나 재상이 투기하는 바람에 단주 자사(端州刺史)로 좌천되었다. 3년 후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조정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 후 10 년간 노생은 황제를 잘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한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렸다. 변방의
장군과 모반을 꾀했다는 것이다. 노생은 포박 당하는 자리에 서 탄식하여 말했다.
"내 고향 산동에서 땅뙈기나 부쳐먹고 살았더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애써 벼슬길에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걷 던 때가 그립구나.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칼을 들어 자결하려 했지만 아내와 아들이 말리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노생과 함 께 잡힌 사람들은 모두 처형당했으나 그는 환관(宦官)이 힘써 준 덕분에 사형을
면하고 변방 으로 유배되었다. 수년 후 원죄(冤罪)임이 밝혀지자 황제는 노생을 소환하여 중서령(中書令)을 제수(除授)한 뒤 연국공(燕國公)에 책봉하고 많은
은총을 내렸다. 그후 노생은 모두 권문세가 (權門勢家)와 혼인하고 고관이 된 다섯 아들과 열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한 만년을 보내다가 황제의 어의(御醫)가 지켜보는
가운데 80년의 생애를 마쳤다.
노생이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여전히 여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짓고 있는 기장밥도 아직 다 되지 않았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네."
노생은 여옹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고하고 하단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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