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다 함. 興:일 흥. 差:어긋날 차. 使:하여금 사.
심부름꾼이 가서 소식이 없거나 더디 오다. 감감 무소식. 갔다가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
[유사어] 종무소식(終無消息)
고사성어는 중국의 독점물이 아니다. 우리말 중에도 재미있는 표현이 많은데, 함흥차사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함흥은 태조 이성계의 고향이며, 차사란 조정에서 懸案(현안)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보냈던 관리를 뜻한다.
조선 건국 후 태조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실시하여 정도전, 조준 등 개국 공신들에게 “도평의사사”라는 기구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이 기구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왕족과 사대부들에게 불만이 높았다. 게다가 태조가 계비 소생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불만을 품은 정비 소생 방원이 태조가 병석에 있는 틈을 타 사병(私兵)을 동원하여 방석과 함께 그의 스승이었던 정도전, 방번을 죽이고 방과를 세자로 앉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태조는 무척 상심해 방과에게 양위하니 이가 정종이다.(1398) 2년 뒤 방원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태종이 되자 태조는 정치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고향 함흥으로 잠적해 버렸다(1401)
태종은 평소 태조가 총애하던 성석린을 차사로 보내 가까스로 태조를 모셔오기는 하지만, 이듬해 다시 함흥으로 가서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 뒤 태종이 문안인사차 차사를 보냈지만, 그 때 마다 차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태조는 수차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다가 무학대사의 간청으로 돌아온다.
이 때부터 함흥차사라면 갔다가 소식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芳碩變後 太祖 棄位奔于咸興 太宗 屢遣中使 問安 輒彎弓而待之 前後相望 使 未敢道達其情 時 問安使 無一得還者 太宗 問群臣 誰可遣 莫有應之者 判承樞府事 朴淳 挺身請行
태조 이성계가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에 은거하고 있었다.
그 후 형제를 무참히 살해하면서까지 왕위를 차지한 태종(이방원)의 행위에 분노한 태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으나 그 차사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은 데서 유래한 말.
[주] 차사원(差使員) : 조선시대 때 각종 특수 임무의 수행을 위하여 임시로 차출, 임명된 관리.'差'는 '시키다' '파견하다' '심부름하다' '使'는 '명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차사란 일정한 용무를 주어 딴곳으로 파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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