遼:멀, 나라 이름 요. 東:동녘 동. 之:갈 지(…의). 豕:돼지 시.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 을 득의 양양하여
자랑함의 비유.
[준말] 요시(遼豕).
[동의어] 요동시(遼東豕). [출전]《문선(文選)》〈주부서(朱浮書)〉,《후한서(後漢書)》〈주부전(朱浮專)〉
후한(後漢) 건국 직후, 어양태수(漁陽太守) 팽총(彭寵)이 논공
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자 대장군(大將軍) 주부(朱浮)는 그의 비리를 꾸짖는
글을 보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 사람이 그의 돼지가 대가리가 흰[白頭] 새끼를 낳자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 게 바치려고 하동(河東)까지 가 보니 그곳 돼지는 모두 대가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폐하[光武帝]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 저 요동의 돼지에 불 과함을 알 것이다."
팽총은 처음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반군(叛軍)
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河北)에 포진(布陣)하고 있을 때에 3000여 보병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했다. 또 광무제가 옛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 (邯鄲)을 포위 공격했을
때에는 군량 보급의 중책(重責)을 맡아 차질 없이 완수하는 등 여러 번 큰공을 세워
좌명지신(佐命之臣:천자를 도 와 천하 평정의 대업을 이루게 한 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오만 불손한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일컫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 후 토벌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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