烏:까마귀 오. 孫:손자 손. 公:공변될, 귀인 공. 主:주인 주.
정략 결혼의 희생이 된 슬픈 운명의 여인.
[참조] 요령부득(要領不得). [출전]《한서(漢書)》〈서역서(西域專)〉
오손은 전한(前漢) 때 서역(西域) 지방에 할거하던 터키계(系)의
유목 민족으로, 그 세력권은 천산(天山) 산맥 북쪽의 이시크를 호수 부 근으로부터
이리하(伊犁河: 일리 강) 유역의 분지를 포함하여 아랄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르 강
상류의 나린 강 계곡에 있던 적곡성(赤谷城: 본거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오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성했던 흉노는 북방 몽골 땅을 근거지로 삼고
한나라를 끊임없이 침범했다. 그래서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武帝)는 흉노를 무찌르기
위해 건원(建元) 26년 (B.C. 115) 장건(張騫)을 오손에 보내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10년 후 무제의 형인 강도왕(江都王)의 딸 세군(細君)을 공주로 꾸며 오손왕 에게
출가시킴으로써 동맹은 더욱 굳어졌다. 이리하여 흉노는 한나라와
오손의 협공에 견디지 못하고 서역은 물론 한나라의 변경으로부터 북방 멀리 쫓겨가고
말았다. 그러자 그 때까지 흉노의 지배하에 있던 서역 50여 이민족의 소국들은 한나라
를 상국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라는 이들 나라의 이반을 막기 위해 구자(龜玆:
쿠차)에
감독, 사찰 기관으로서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를 두었다. 건국 이후 100년 이상
시달려 온 흉노의 침 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먼 이국의 이민족에게 주어진
오손 공주는 망향의 노래를 부르며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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