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최선보 : 해군의 낭장을 지냈다. 최충
: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최윤문 : 충의 아들, 호조전리를 역임하여 우찬성에 추증되었다. 최사유
: 윤문의 셋째 아들, 사마시를 거쳐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 기사관을
역임한 후 1432년(세종 14) 좌헌납을 거쳐 성균관사예가 되었다. 후에 노인직으로 지증문원사에 올랐다가 은퇴하였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최항(恒) : 집현전 부수찬(副修撰)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고
영의정을 두 차례나 역임하였다. ·최흥원(興源) : 최항의 증손으로
선조 때 류성룡(柳成龍)의 뒤를 이어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최동식
: 당대의 문관이며 의병장인 우성전의
문인으로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안변부사로 나가 관개를 크게 일으켰다. 최계옹
: 1681년(숙종 7)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설서를 거쳐, 1695년(숙종 21) 지평으로 동지사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와 후에 정언, 지평을 지내고 1704년(숙종 30) 장령으로서 단종 폐위를지지한 대신들을 탄핵하다가 파직당한 후
1710년(숙종 36) 홍문관에 등용되어서도 과격한 상소를 하여 제주목사로 좌천당하기도 하였다. 그의 동생
최시옹 : 일찍기 남원 출신의 문인
윤증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학행으로 당대의 정치가이며 유학자 박세채의 추천을 받아 지평이 되고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저서에 [동감유고]가
있다. ·최한기(漢綺)
: 조선 말기 실학파의 거두이며 한국사상사에 중요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최응립(應立)
: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강화도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최상중 최연 : 최상중의 아들, 1603년(선조 36) 식년문괴에 급제하여 예조좌랑, 장령, 응교, 집의, 사간 등을 역임하고
가선대부에 올라 한성부좌윤을 지내다가 사퇴하였으며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최온 : 연의 동생 1609년(광해 1)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은퇴하여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다가 1653년(효종 4)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