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2년(우왕 8) 14세 때 진사가 되고, 1385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전교(典校) 주부(主簿) 진덕박사(進德博士) 등을 역임했다. 조선
건국 초 천우위우령(千牛衛右領)중랑장 겸 전의감승(典醫監丞) 의학 교수관(敎授官)이 되고 사헌부 시사
성균관 학정(學正) 직예문관(直藝文館) 사재소감(司宰少監) 등을 거쳐 예문관 직제학 등을 지냈다.
1407년(태종 7) 문과 중시(重試)에 급제하고, 그 후 예문관 대제학 예조판서
참찬 등을 거쳐 1426년(세종 8) 판우군(判右軍) 도총제부사(都摠制府事)가 되었다. 대제학을
20여년간 지내는 동안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도맡아 지어 명문장가로
유명했으며 '태조실록(太祖實錄)'의 편찬과 '고려사(高麗史)'의
개수작업에 참여했고,
시에도 뛰어나 문묘 기자묘의 비문과 '낙천정기(樂天亭記)'
등을 지었다.
거창의 병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문집 "춘정집(春亭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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