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왕의 교지나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관청인 한림원에 들어간
후, 한림원의 최고위직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그 후에 이부시랑(吏部侍郞)과 국자제주(國子祭酒)라는 관직을
역임했다.
1269년 폐위되었던 원종이 복위하여 중국의 원나라에 들어갈 때, 외교문서인 표문(表文)을 백문절(白文節)로 하여금 짓게 했는데,
원종이 폐위사실을 숨기고자 함에 붓을 놓고 통곡하며 호소한 끝에 사실대로 기록했다고 한다.
그 후 고려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 왕족직속관청 책임자인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