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提川) 출신이다. 예조참의 안서우(瑞雨)의 손자이고, 오위도총부부총관 안극(極)의 아들이다.
1749년(영조 5) 천거로 후릉참봉이 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만녕전 참봉이 된 후 봉사·직장·별제·감찰 등을 지내고 사직했다.
그 후 세자익찬·세손사부·회인현감 등을 거쳐, 1776년 목천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1783년 돈령부 주부가 되고, 1789년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다음해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광성군에 봉해졌다. 이황을 사숙
했고, 이익의 학문을 계승하여 이용후생의 면을 학문의 목적으로 하는
실학을 깊이 연구했다.
특히 역사학에 전심하여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세밀히 고증 비판했다.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순암집(順菴
集)· 상헌수필(橡軒隨筆)이 있고, 편저에 잡괘설(雜卦說)·
희현록(希賢錄)·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 열조통기(列朝通記)· 임관정요(臨官政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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