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0년(문종 즉위) 추장문과에 급제하고, 1453년(단종
1) 저작을 거쳐 1455년(세조 1) 호조좌랑으로 원종공신 2 등에 오르고
서연관이 되었다. 1457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고, 1463년 동부승지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李施愛-亂) 때 공을
세워 우참찬에 특진, 적개공신 1등(敵愾功臣 一等)으로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졌다.
1468년 세조가 죽자 3년간 광릉(세조의 능)의 수묘관으로 있었고
1471년(성종 2) 경상도에 한재가 들어 기근이 심하자 우찬성으로 진휼사가
되어 기민을 구제했다. 1474년 이조판서로 의금부 당상을
겸직했고, 1477년 좌찬성으로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다음해
영중추부사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1479년 명나라가 건주위를
토벌할 때 좌의정으로 서정 도원수를 겸직, 건주위를 토벌했으며, 1481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1484년 영의정에 올라 부원군에 진봉,
이어 기로소에 들어가 1496년(연산 2) 궤장을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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