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宣祖) 초에 무과에 급제하고, 위장(衛將) 전라도 수군절도사(全羅道水軍節度使)를
거쳐 13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죽령(竹嶺)을 수비했으나 패전하고
수어사(守禦使) 신 할(申 )의 참모가 되어 임진강(臨津江) 방어작전을 수행했다. 적의 파죽지세로 한강(漢江) 수비에 패하고
한양(漢陽)마저 적의 수증에 들어가 선조(宣祖)가 북으로 피난가는 와중에 임진강에서 적과 8,9일간 대치하는데 무슨
수작인지 적은 그들의 병막(兵幕)을 모두 태우고 후퇴하였다. 이에 수어사 신 할(申 )이 적이 패퇴한다 하여 진격을
하명하자 극량은 "적이 우리를 유인하는 것이니 경솔하게 진격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대장의 명령에
항명한다고 하여 참형(斬刑)하려 했으나 좌우가 말리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우군을 거느리고 임진강을 도강하여 진격하다가 적의
작전에 말려 대패하고 신 할(申 )도 죽고 극량도 군사들을 지휘하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그 후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고 개성(開城)의 숭절사 (崇節祠)에 배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