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향교는 1399년(정종 원년) 창건하였다고 읍지에 기록되어 있으나 분명치 않다. 그 후 1479년(성종
10) 현 위치로 이건한 후
1689년(숙종 15) 현령 박세웅에 의해 대성전과 명륜당이 수리되었다.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서재, 내·외삼문, 고직사
등이 있으며 명륜당 좌우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 500여년이 넘는 것으로 창건 당시에 심은 것이라고 하나 확실치 않다.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성전, 내삼문, 명륜당, 외삼문 순으로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경사진 건축으로 남서향의 좌향을 하고 있으며 동·서재는 좌우대칭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전퇴로 약 130cm의 기단을 놓고 자연석의 덤벙 주춧돌상에 민흘림이 약한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개방된 전퇴의 주춧돌이 석탑의 지붕돌과 기단받침, 상대석받침으로 된 것으로 보아 근처 사찰의 유물을 옮겨와 이용한 것 같다. 구조는 2고주
5량이며 공포는 주심포계의 외1출목 2익공양식으로 주료하부에 있는 헛첨차가 외목도리의 행공첨차와 소 혀모양의 제공을 받치고 있는데 제공의 끝은
앙혀모양이며 초공과 순각판이 있다. 내부는 포가 없고 보아지 형식으로 보는 받치고 있으며 창방과 장혀사이 꽃받침은 귀면으로 단청이 화려하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바람막이 판이 있다.
명륜당은 정면 4칸에 우측면은 2칸인데 좌측면은 전후퇴의 특이한 구조로 자연석의
덤벙 주춧돌 위에 민흘림과 배불림이 약한 원형기둥을 각각 세웠으며 가구는 대성전과 같이 2도주 5량이나 우측은 고주가 아닌 무고주 5량이며
판대공의 모습이 대성전과 달리 전혀 없는 사다리꼴 판으로 되어 있다. 공포의 형식은 주심포계의 외1출목 1익공양식으로 대성전과 동일하며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다. 동재는 정면5칸, 측면 1칸 전퇴로 맞배지붕에 원형기둥이며 서제는 정면4칸, 측면1칸 전퇴로 맞배지붕이고 좌측에는
누마루가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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