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향교는 횡성읍내에서 마산리 방향으로 나가다가 왼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태조 7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건립지는 알 수
없고,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기까지 수차례의 이전이 있었다가 약 260여년 전에 북천(北川)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한편 갑천면
중금리와 청일면 유동리에는 향교터라고 하는 곳이 있고, 특히 유동리는 일명 ‘고을터’ 또는 ‘향교말’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지명으로 볼 때 이곳에
향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현재 이를 증빙할 뚜렷한 유물이나 유적은 없다.
향교의 건물배치는 배향(配享) 공간과
강학(講學) 공간을 배치하는 여건에 따라 크게 전묘후학배치(前廟後學配置)와 전학후묘배치(前學後廟配置)로 나누어지고, 이외에 일부 변형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곳도 있다. 대체로 향교가 자리잡은 대지가 평지인 경우에는 전면에 배향 공간이 나오고 후면에 명륜당을 비롯한
동재(東齋)․서재(西齋) 등 강학 공간을 두는 전묘후학(前廟後學) 배치를 이루고 있다. 대지가 구릉이나 산기슭 같은 경사지일 경우에는 지대가
높은 뒷쪽에 배향 공간을 두고, 지대가 낮은 전면에 강학 공간을 배치하였다. 횡성향교는 산기슭에 건축되어 후면에 배향 공간을 두고, 전면에 강학
공간을 두는 배치를 하고 있다. 대성전(大成殿)을 제외한 건물과 기타 소장되고 있는 제기(祭器) 및 문헌은 한국전쟁 당시에 모두 소실되어
1954년에 동재(東齋)․서재(西齋), 1960년에 명륜당(明倫堂)이 재건되었다. 대성전은 1971년에 재건하였는데, 공사 당시 발견된 예전
상량문(上樑文)에 따르면 대성전은 1647년(인조 25)에 건립된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 대성전 10간, 중삼문(中三門), 동재(東齋)
7.5간, 서재(西齋) 7.5간, 명륜당(明倫堂) 20간, 취사당(炊事堂)․수복실(守僕室) 3간 등 총 48간의 건물로 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오성(五聖)과 공문십철(孔門十哲), 송조육현(宋朝六賢), 동국십팔현(東國十八賢)이 봉안되어 있다. 1985년 1월 17일에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되었다.
공자(孔子)를 비롯한 성현(聖賢)을 봉안한 곳으로 정면 5간, 측면 2간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향교의 학도들이 강학(講學)하는 곳으로 정면 5간, 측면 2간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건물구조는 2층으로
되어 있어 20간 규모인데 윗층은 명륜당(明倫堂), 아래 쪽의 중앙은 삼문(三門)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 5간, 측면
1.5간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중앙에는 툇마루를 깔았고, 좌우 공간에 온돌방을 설치하였다. 사각기둥을 초석에 올려 놓았고, 문은
띠살창호를 사용하였다.
정면 5간, 측면 1.5간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중앙에 긴 띠살창호를 내고, 기둥은
동재와 마찬가지로 사각기둥을 초석 위에 올려 놓았다.
동․서재를 지나 대성전 경내로 들어가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문으로,
솟을대문 양식으로 되어 있다.
대성전 경내 양측에 설치되어 있는 문으로, 맞배지붕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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