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향교의 창건년대는 확실치 않으나 799년(신라 소성왕 원년)에 지금의 진주(晋州)인 정주의 노거현(老居縣)을 국학의
학생녹읍(學生祿邑)으로 했다고 한것과 조선 세종조의 영의정 하연(河演)의 "사교당기문(四敎堂記文)"에 의하면 고려 현종 때 인물인 은열공 강민첨(姜民瞻) 장군이 이곳에서 공부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진주 향교는 고려초에 이미 설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주향교의 건축연대는 정확히 전해지는 바가 없습니다. 신라 소성왕 원년에 지금의 진주인 청주의 노거현을 국학의 학생 녹읍으로 했다고 한 것과
고려 현종때 인물인 은열공 강민첨장군이 이곳에서 공부하였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고려 초에 지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어 그 역사가 깊습니다.
전해지는 자료에 의하면 고려 성종 6년 현재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으로 창건되었다가 조선 명종 13년에 현 위치로
옮겨와 목사 김홍이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선조 36년
병사 이수일이 문모를 중건하고, 정미년 병사 김태허가 명균당, 동.서재를 중건하는 등 몇 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진주향교는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사교당, 풍화루로 이루어져 있어 비교적 큰
규모이며 오늘날 교육의 도시인 진주의 바탕이 되는 곳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