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8년(인조 6)에 창건된 향교로 초계면 서쪽 끝에 위치하며, 주변에 대나무 숲과 민가가 인접해 있다. 1800년대 초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819년에 대성전(大成殿)을 중수하고, 1843년에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한 사실이 전할 뿐 그 밖의 자세
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993년에 동재(東齋)·서재(西齋)를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內三門)·명륜당·풍화루(風化樓) 등이고, 앞에는 강학(講學)을 하는 명륜당을 두고
뒤에 성현(聖賢)을 봉사하는 대성전을 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이다. 대지는 배[船]모양으로 폭이 좁
고 길쭉하며 급경사지를 3단으로 나누어 평지로 조성하여 건물을 배치하였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이고주 5량구조에 1출목 2익공 결구형식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폐쇄형 건물이다.
정면 3칸에 싸여 닫이골판문이 설치되었고 측면 중앙에 채광창을 달았다. 대성전 전면 좌우에 동무·서무가 대칭으로 배치되었
고, 제사를 위하여 전면 1칸을 개방하였다.
양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3량구조에 초익공 결구를 하였으며 평삼문이다. 자연석을 쌓아 만든 높은 기단 위
에 세운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무고주 5량구조에 초익공 결구를 하였으며, 양 협칸은 방으로 하고 가운
데 3칸은 대청으로 하였다. 전퇴가 없고 대칭 전면에 삼분합문을 달아 폐쇄감이 강하며 높은 기단 위에 건물을 세웠다. 명륜당
후면 5칸에 전부 쌍여닫이문을 달고 디딤돌을 놓아 바로 내삼문을 통해 대성전에 오를 수 있다. 동재와 서재는 정면 3칸의 맞배
지붕으로 전퇴를 두었고, 전면기둥은 원주로 하였다.
관리사가 경역 안의 명륜당 뒤편에 위치한 것이 특이하다. 향교의 정문인 풍화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전면 4
개의 주초에 돌거북을 조각하였다. 처마도리 밑과 장혀 사이의 원형판에 ‘인·의·예·지’ 등의 글자와 팔쾌 등을 조각하였다. 하부
의 출입문 상부에 ‘팔덕문(八德門)’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상부 누마루에는 계자난간을 설치하였고 출입문에는 내삼문과 같
이 삼태극을 그려 놓았다.
현재 교육적인 기능은 사라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참고로 팔덕(八德)이란 인(仁)·의(義)·예(禮)·지(智)·충(忠)·신(信)·효(孝)·제(悌)의 여덟 가지 덕(德)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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