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문화재자료 1호 분 류 향교 수 량 일곽 지정일 1983.09.19 소재지
경기 수원시 권선구 교동 43 소유자 향교재단 관리자 향교재단
※ 본문설명
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동시에 담당하였다. 원래 화성군 봉담면 와우리에 있던
수원향교는 1795년(조선 정조 19)경 현 위치로 옮겨 세우고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향교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하고 있다.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3칸에 문을 달았고 양쪽 2칸은 막혀 있다. 대성전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고 동무와 서무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공자와 그의 제자 등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제사
의례에 적합하도록 앞면에 개방된 마루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 보충설명
현재의 향교(鄕校)는 조선(朝鮮) 정조(正祖)
당시(1795년경)에 수원성곽(水原城郭)을 축성하면서 화성군(華城郡) 봉담면(峰潭面) 와우리(臥牛里)에 있던 것으로 이전(移轉) 중창(重創)한
것이다. 향교 건축으로서 규모와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졌을 뿐 아니라 건물의 질도 우수하여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배치는 향교의 가장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으로서 앞에 명륜당(明倫堂)을, 뒤에 대성전(大成殿)을 배치했다. 전면의 외삼문(外三門)에서부터 맨 뒤의 대성전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지형에 장대석으로 석축(石築)을 하여 층이 지도록 함으로써 공간의 위계(位階)를 점증시켰다. 문묘(文廟) 공간에는 대성전 좌우에
서무(西무)와 동무(東무)를 배치하여 공자(孔子) 맹자(孟子) 등 중국(中國) 현철(賢哲)뿐 아니라 우리나라 현철의 위패(位牌)까지 봉안하고
있다. 대성전은 익공계(翼工系) 건물로서 지붕에 부연을 단 겹처마 박공지붕집이고 1고주7량(一高柱七樑)의 구조이다. 전퇴를 앞으로 개방했으며
5칸 정면 전체에 분합문(分閤門)을 달고 그 위에 붙박이 교창(交窓)을 내어 내부에 채광이 되게 했다. 동·서무(東·西무)는 크고 육중한 느낌의
대성전에 비해 아담하고 소박한 느낌이 드는 홑처마의 굴도리집이다. 합각(合閣)지붕집인 명륜당(明倫堂)은 후대에 많은 개조와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내·외삼문(內·外三門)은 솟을대문 형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