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관청리에 있는 향교.
[문화재지정사항]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
[내용]
고려는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의 고을마다 1개의 향교 개설을 장려하였는데 강화도에는
1127년(인종 5) 3월에 내가면 고천리에 건립되었다.
1232년(고종 19)에 강화읍 갑곶리로 이전하였다가 몽고군의 침입으로
1259년(고종 46)에 서도면 볼음도리로 재이전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24년(인조 2) 유수 심열(沈悅)이 송악산 기슭으로 옮겼으며 1629년 강화부윤 이안눌(李安訥)이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세우는 등
비로소 향교의 완전한 체제를 갖추어 학궁이라 하였다. 1673년(현종 14) 유수 민시중(閔蓍重)이 남산골로 이전하였으나 1731년(영조
7)에 유수 유척기(兪拓基)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1766년에 유수 이은(李渤)이 중수함과 동시에 소동문 밖에 있던 비석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건물은 6동(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제기고, 주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초익공 주심포계열의 맛배집으로 중국의 5성과 우리나라 18유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며 1명의
전교(典校)와 6, 7명의 장의(掌議)가 운영을 맡고 있다.
[참고문헌] 강화향교지,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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