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문화재자료 1호 명 칭 대구향교대성전 (大邱鄕校大成殿) 분 류 향교 수 량 1동 지정일 1982.03.04
소재지 대구 중구 남산동 735-4 소유자 대구향교재단 관리자 대구향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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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설명
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으로서,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기능과 학생을 교육하는 강학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였다.
대구향교는 1407년(조선 태종 7)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1599년(선조 32)에 달성공원
근처에 다시 세웠다가 1605년(선조 38) 교동으로 옮겼고, 1932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문묘·삼문 등이 있다.
대구향교로 들어서면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이 숙식하는 동재·서재가
있으며,내삼문을 열고 뒤채로 들어서면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나타난다. 대성전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대구향교 대성전은 대구 시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향교의 중심 건물로,전체적으로
엄숙하고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건물이다.
※ 보충설명
1398년(조선(朝鮮) 태조(太祖) 7)에 교동(校洞)에
초창된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전부 소실(燒失)된 것을 7년 뒤인 1599년(선조(宣祖) 32) 달성공원 근처에
재건(再建)하고 1605년(선조 38)에 다시 교동으로 이건하였다. 그후 시가가 넓어지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1932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1973년 시(市)에서 향교(鄕校)를 보수 정화하고, 전통적인 유교문화(儒敎文化)의 진흥을 위하여 영남각지(嶺南各地)에서 유림(儒林)들이
모여들어 연 2회(춘(春), 추(秋))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올리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공포(공包)를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짜올린 다포식(多包式) 건축(建築)으로, 단층 맞배기와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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