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향교는 창건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말기에 현유(賢儒)를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현재의
구교동(舊校洞)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소실(燒失)되자 원지(院旨)에
중건(重建)하였다.
1660년(현종 1)에 옛 읍성(告邑城) 안으로 이건(移建)하였고, 1676년(숙종 2)에 구교동으로
환건(還建)하였으며, 1754년(영조 30)에 현 위치로 이건(移建)하여 수 차례의 중수와 보수를 하였다. 그 후 1918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하였고, 1960년에 교궁(校宮)을 중수하였으며, 1965년에 교궁 전반에 걸쳐 보수와 개축을 하였다. 1984년에 보수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내삼문(內三門)·전사청(典祀廳)등이 있다.
향교의 배치는 내삼문을 중심으로
전면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후면에 문묘(文廟) 공간인 대성전이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으로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전면 툇간에 설치된 평난간(平欄干)은 후에 보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향교는 조선시대에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게
되었다. 현재 대성전에 5성(五聖)·송조4현(宋朝四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을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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