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향교는 현유(賢儒)를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1399년(정조 1)에 창건되었다.
1614년(광해 6)에 지형이
협소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남천리(南川里)로 이건(移建)하였고, 수해(水害)로 인하여 1659년(효종 10)에 눌대(訥臺)로 이건하였으나
화재(火災)를 당하였다. 1791년(정조 15)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고, 1811년(순조 11)·1870년(고종 7)·1891년(고종 27)에
각각 중수하였다.
1915년에 풍화루가 철폐되었고 서재가 소실(燒失)되었다. 1977∼1978년에 교궁을 보수하였고,
1981∼1982년에 대성전과 수직사를 개축(改築)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나, 풍화루와 서재는 현재까지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향교의 배치는 내삼문을 중심으로 전면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후면에 문묘(文廟) 공간인 대성전이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향교는 명륜당과 대성전이
위·아래로 배치되어 있는 일반적인 향교의 배치 형식과 다른데,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문묘 공간인 대성전의 우측 전방에 둔 것이
특이하다.
대성전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은 정면 4칸·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동재(東齋)는 유생들이 기거하던 기숙사이다.
이 향교는 조선시대에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게 되었다. 현재 대성전에 5성(五聖)·송조4현(宋朝四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을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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