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때 창건되었으나 선조대 임진왜란시 재화로 불타자 보은향교와 합하였다가 1611년(광해
3)에 재건하였다.그뒤
1924,1941,1952,1971등 수차례 중,보수 하였다.
건물의 배치는 후묘전당으로 문묘에는 정면 5칸,측면3칸의 맛배지붕의
대성전이 있는 공자를 주향으로 4성(사성) 10칠(십칠),송조4현(송조사현)과 우리나라 18현(십팔현)의 위패를 봉인하였다.
그리고 강당인 명륜당은 정면 5칸,측면 2칸의 8작지붕 2층복조인데 본래는 누문형식으로 1층은 모두 개방된 것을 뒤에 벽을 쌓은
것이라고 생각된다.1979년부터 3년간 4,150만원을 들여 대성전 해체보수 내삼문 해체 보수와 명륜당 면딱기 및 지붕 번와을 하였고 조립식
담장을 막돌담으로 완전히 쇄신 보수 하였다.
향교는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등을 지급받아 교관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이후 신학제실시에 딸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선제를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