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향교는 창건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987년(고려 성종 6)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인 태조(太祖) 연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향교는 1446년(세종 26) 세종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椒井) 약수에 행차했을 때 서적을 하사한 일이 있고,
또
1464년(세조 10) 세조가 청주에 행차했을 때 문묘(文廟)에 친히 제향한 일이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1609년(광해군 1)에 기산리(箕山里)로 이건(移建)하였고, 1663년(현종 4)에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하였으며, 1683년(숙종 9)에
현감(縣監) 이언기(李彦紀)가 현 위치로 재이건(在移建)하였다. 그 후 1879년(고종 16)에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905년 이후로 수
차례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서무·양현당 등이 있다.
향교의
배치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외삼문과 서향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내삼문을 기준으로 문묘(文廟) 공간인 대성전이 후면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측면 2칸 반 규모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 건물이며, 전면 반칸은 퇴칸으로
개방하였고, 내부는 통간(通間)으로 하여 신위(神位)를 모시고 있다.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동무는 1982년, 서무는
1981년 복원한 것이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정면 5칸·측면 3칸 규모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향교는 조선시대에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 90명과 자모생 70명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게
되었다.
현재 대성전에 5성(五聖)·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을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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