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다.
1656년(효종 7) 별시문과에 급제, 여러 내외직을
거쳐, 1679년 한성부 좌윤으로서 윤휴(尹鑴),
허견(許堅)등 남인을 탄핵하다가
유배되고, 이듬해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대제학 대사간을
역임, 이때 서인이 노소론으로 분열되자 소론 영수가 되고, 1684년 우의정,
이듬해 좌의정, 1687년 영의정에 올랐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득세하자 유배되었다.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로 다시
영의정에 기용되고, 1696년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1701년희빈 장씨의
처벌에 대해 경형을 주장하다가 숙종이 사사를 결정하자 낙향했다.
그 후 부처 파직 등 파란을 겪다가 서용, 1707년(숙종 33) 치사하고,
봉조하가 되었다. 문사와 서화에 뛰어났다.
숙종의 묘정에 배향,
강릉의 신석서원(申石書院), 종성의 종산서원(鐘山書院), 무산의 향사
등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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