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장령진(長嶺鎭)인데,
당문(唐文) 또는 박평군(博平郡)이라고도 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화주(和州)라 하였다.
995년(광종 6)에 처음으로 성보(城堡)를 두었다.
995년(성종 14)에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로 합병, 개칭하였다.
1028년(현종 19) 화주방어사(和州防禦使) 본궁(本宮)이 되었다.
고종(高宗) 때 원(元)의 쌍성총관부가 설치되고 등주(登州)와 통주(通州)를 합쳤으나
충렬왕(忠烈王) 때 다시 복구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 화주목(和州牧)이 되었다.
1369년(공민왕 18)에 화령부(和寧府)로 고쳤다.
조선에 들어와 태조(太祖)는 영흥부(永興府)를 개칭, 진(鎭) 이름을 평주(平州)라 하였다.
1403년(태종 3)에 군(郡)이 되었다가, 그 이듬해 부(府)로 승격,
1416년(태종 16)에 화주목(和州牧)으로 개칭, 토관(土官)을 두었다.
세종조(世宗朝)에 와서 진을 두었다.
1470년(성종 원년)에 관찰사영(觀察使營)을 본부(本府)에 옮기고 토관을 두었다.
1509년(중종 4)에 다시 관찰사영을 함흥으로 옮기고 영흥대도호부(永興大都護府)에 승격되었다.
1895년 영흥군(永興郡)이 된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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